자율성 : good to have 에서 must have로
한글과 영어를 섞어 쓰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전달하기가 까다로워 그냥 영어로 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까지 자율성은 있으면 좋은 것에 가까웠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업무부터 취미까지 생활 전반에 대한 계획을 짜고,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행동하는 것.
오프라인에는 각종 세미나, 컨퍼런스가 넘쳐난다. 웹에는 더 많은 자료가 있다.
적당한 사양의 컴퓨터만 있으면 웹에 있는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유명 대학교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도 있고, 현직 도수치료사의 생생한 근육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소위 "가성비" 좋게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쳤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사람들이 밀집하는 각종 행사들이 취소/연기되고,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밥을 먹고,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를 보던 공간에서 회사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집과 회사는 명백히 분리된 공간이었고,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은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흐려졌다. 휴식을 위한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한다.
집과 회사를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던 직장인은 하나의 큰 도전을 맞게 되었다.
"업무만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아도 일정한 수준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가?"
옆에 침대가 있어도, 근처에 거대한 TV가 있어도, 툭하면 고양이가 노트북 자판을 밟아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율성은 필수가 되었다.
바뀐 건 공간만이 아니다. 팀원들을 비롯하여 함께 협업하는 사람들조차 근거리에 있지 않다. 시야에도 없다.
업무 지시, 진행 사항 확인, 각종 문의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면대면 대화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메신저는 비동기적 소통 수단이다. 메세지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혹여 메신저 알람을 놓친다면 상대방은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까 아트팀에서 OO씨 찾던데요?" 라고 말해줄 사람은 없다.
직장인은 이제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환경적 요인과 맞서 싸우고,
자신의 업무 진행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협업 인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이번 재택근무 기간 뿐만 아니라, 아마 앞으로도 계속.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도 바이러스는 언제든 창궐할 수 있다.
머지않아 회사들의 채용 기준에 새로운 기준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재택근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사람은 긴장이 풀리기 쉬운/방해요소가 많은 환경에서도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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